Date |
2003/07/26 10:38:31 |
Name |
안개사용자 |
Subject |
[픽션] 사이코 K씨, 부커진 회의실에 가다. |
사이코 K씨, 부커진 회의실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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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새벽녘, K씨는 어두컴컴한 메가웹을 찾았다.
그가 두 번째 의자 모서리 아래 버튼을 누르자 의자가 뒤로 젖혀지더니 사람하나 들어갈 만한 비밀문 하나가 나왔다.
K씨가 비밀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자니 곧 사람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방이 나타났다.
이 방이 그 유명한 옹겜넷 부커진 회의실이었다.
그 방 한가운데에 한 사나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검은 복면의 근육질의 사나이... 바로 그가 옹겜넷 리그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부커진의 두목(?) 마스터 X였다.
그의 옆에는 그의 초크슬램에 당해 쓰러져 신음하는 대여섯명의 부커진들이 있었다.
원래 이번 리그의 기둥은 <저그의 부활 시나리오>였고, 이제껏 회사(?)를 위해 희생해온 홍진호선수를 우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진호선수는 어제 강민선수를 지목, 계획에 없던 죽음의 조가 탄생해 버렸기 때문에 마스터X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K씨는 잔뜩 긴장하며 다가갔다.
"자넨 왜 이리 늦었나?"
"넵.... 안녕하셈! 대구에서 오느랑..^^;. 그리고... 저희 집에는 케이블이 안나와서리... 게시판보고 곧바로 달려온다는 게 말이죵...ㅠㅠ"
"내가 누누이 말했지!!! 난 통신어투같으 거싫어한다고"
"퍼퍽!!!! 우욱!"
"엄살부리지 말고 일어서서... 자네의 이번 리그 계획을 설명해봐!!"
분노에 찬 마스터 X의 슈퍼킥을 맞고 뒤로 꼬꾸라진 K씨가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서서 자신이 밤새 준비해온 몇 가지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저그의 부활 시나리오>
"최근까지 저그유저가 결승에서 우승한 것이 없어, 저그유저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번 리그에서 꼭 그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승자로는?"
"비록 홍진호선수를 비롯한 몇 명 선수들이 계획에 없던 죽음의 조를 만들고 말았지만, 그대로 홍진호선수를 중심으로 저그부활시나리오를 진행해도 될 듯 싶습니다.
물론 새롭게 조용호선수, 주진철선수등의 부자저그스타일을 밀어줌으로서 클래식한 저그 부활의 쾌감을 시청자들이 만끽하게 하는 것도 괜찮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아무튼 어떠한 저그유저라도 무난히 이 시나리오를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악마저그의 부활은 어때? 장진남선수가 어떤 부커진에게 한번만 임요환선수에게 지는 대본을 쓰면 회사를 그만 둘거라고 협박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
"그럴 줄 알고 이미 장진남선수가 임요환선수를 결승전에서 3:0으로 누르는 시나리오도 짜놓았습니다."
"아... 그건 그렇고 장진남선수와 전태규선수 어제 말 잘하더군... 누가 그 대본을 썼나?"
"유명 코미디 극작가가 썼다고 들었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아 이번 리그 캐스터 대본을 부탁해볼까 합니다."
"아주 좋아..."
<플토의 전설 시니리오>
"근데 플토유저들의 이번 리그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던데..."
"네... 작년 플토의 전설은 완전 대박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을만 오면 그 전설 때문에 플토유저들의 가슴이 싱숭생숭해진다고 합니다."
"가을에는 플토라...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작년 가을에 두 번이나 플토가 우승을 했지만, 여전히 플토의 우승에 대한 기대가 뜨겁습니다. 한번 더 써먹어도 먹힐 거 같습니다."
"으음.... 많은 사람들이 바란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좋을테지..."
"제 생각으론 좀더 극적효과를 내기 위해 플토선수가 플토킬러 장진남선수를 3:0으로 누르면서 플토의 완성형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자네... 너무 3:0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따위로 안일하게 시나리오 짤 거라면 당장 관둬!!"
"죄송합니다..."
<황제의 마지막 불꽃 시나리오>
"임요환선수의 입대를 맞이하여 이제껏 회사(?)를 위해 수고해준 그를 위한 시나리오도 짜보았습니다."
"그 친구 고생 많이 했지.... 하지만 너무 파워가 세진 거 같아.... 백스테이지에서 너무 개입하는 느낌이 들어... 이번 조지명식도 그의 입김으로 이루어진 거 같고... 더 영향력을 키우고자 우리 회사 주식을 몰래 사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그래도 워낙 공헌이 커서..."
"....."
"아무튼 제가 이번 결승전에서 무난하게 저그유저을 이기는 쪽으로 짜보았는데 본인은 이제껏 결승전에서 자기가 져왔던 플토를 꺽고 싶다는 군요. 그래서 임요환선수가 플토유저를 3:0으로 누르는 시나리오를.. 퍼퍽! 아야!"
"시나리오가 무슨 장난인줄 알아! 3:0 결승전 고만 써먹어! 세상을 그렇게 쉽게 살지마!"
<기타 시나리오>
"안돼! 안돼! 다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야! 뭔가 새로운! 획기적인 게 필요해! 그런 거 없나?"
"포스트 임요환을 위해 차세대 유저들을 밀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윤열선수라든지...."
"으음..."
"그 외에 외국인유저를 우승시키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타지생활을 오래해서 집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론 한국에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당근을 줄 시점이 아닌가 해서요."
"으음.... 보다 다양한 경기를 위해선 그들이 필요하니 그런 방법을 쓸 때가 되긴 했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번도 우승못한 게이머들을 모아다가 제비뽑기를 해서 결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 프로게이머들이 요새 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우승도 좀 돌아가면서 하는 평등사회를 지향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으음......."
이제까지 시나리오설명을 마친 K씨는 마스터X의 눈치를 살피면서 천천히 뒷문으로 나갔다.
"잠깐..."
"네?"
"어떤 사람이 내게 이런 사진을 보내왔더군.... 이게 뭔지 아나?"
마스터X의 손에는 사진이 한 장 들려져 있었다.
사진 속에는 K씨가 임요환선수에게 싸인을 받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누군가가 요새 우리의 정체를 공개해 가고 있어 힘든 마당에 자네가 임요환선수에게 사주받고 있을 줄은 몰랐네..."
"아닙니다. 그냥 전 팬으로서..."
"게이머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정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부커진 규칙 1조를 모른단 말인가?"
"하악!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안되네.... 자넨 해고야."
"제발..."
"좋아... 마지막으로 괜찮은 시나리오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네."
"그.... 그럼 이런 시나리오는 어떻습니까?"
".....?"
"대본을 주지말고 상황만 설정한 후 나머지를 게이머의 애드립에 의존하는 겁니다. 왠지 꾸민 거 같지도 않고 신선하지 않을까요?"
"........."
하지만 마스터X의 대답이 없었다.
K씨가 고개를 들어보니 마스터X는 밤샘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책상 위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K씨는 조용히 자신이 써온 시나리오를 마스터X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그의 책상에는 다른 부커진들이 써온 시나리오들이 수천개가 올려져 있었다.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채택될 것인가?
아니면, 이번 리그는 시나리오 없이 예측불허의 리그로 진행될 것인가?
여러 가지 상념이 K씨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제부터 매경기를 뚫어져라 지켜보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K씨는 메가웹을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아직까지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드는 K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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