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3/07/04 17:31:49 |
Name |
카발리에로 |
Subject |
스포츠서울에서 퍼 온 가슴 아픈 글... |
혼자 읽기 아까워서 퍼왔네요.. 남자인 게 정말 한 번씩 창피합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행위는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송인준 재판관)는 26일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벌금형이 확정된 전직 공무원 A씨가 제기한 위헌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대5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성범죄자의 신상과 범죄사실은 이미 공개재판에서 확정된 유죄
판결의 일부이지 사생활에 관한 새로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공익목적을
위해 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수치심 등이 발생된다고 해 이를
기존의 형벌 외에 또다른 형벌로서 수치형이나 명예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신상공개제도의 입법목적은 해당 범죄인의 신상과 범죄행
위를 공개함으로써 일반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어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강
조했습니다. 따라서 입법 당시부터 신상공개 조항을 놓고 찬.반 양론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위헌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됐으며, 오는 12월로 예정된
제5차 신상공개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중 재판관 5명은 "현대판 주홍글씨에 비견할 정도로 수치형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지닌 신상공개 제도는 대상자의 인격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A씨는 2000년 7월 중학 2년생인 여학생과 성관계를 갖고 6만원을 준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는데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의해 신상공개 대상자로 선정되자 서울행정법원을 통해 지난해 7월 위헌심판을 제청했습니다. 청소년성보호법은 2000년 1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신상공개제도는 2001년 8월부터 올 4월까지 4차례에 걸쳐 대상자 1천926명의 명단이 공개됐고 매번 첨예한 찬반론을 야기했습니다.
글쎄요.. 나름대로 이해는 갑니다. 이미 한번 죄의 대가를 받았는데 공중앞
에서 신상이 공개된다는 것,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당사자에게는 죽
기보다 싫겠지요. 특히 A씨처럼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경우라면 가혹하다고 하소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판단 능력이 취약한 미성년자들과의 관계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강제성을 띈 어른의 추악한 범죄라는 게 타당합니다. 하물며 성폭행과 같은 천인공노할 범죄라면 그 무엇으로 응징한들 피해자의 아픔이 어루만져지겠습니까. 아래 사연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개한테 물려본 경험, 아마도 이 말이 제일 정답인 것 같아요. 세상에 딸
가진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본 문제라 몇번을 망설이다 이렇게 적었습니
다. 지금은 환히 웃는 내 딸아이, 성폭행...남들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하지
만 운명의 장난인지 제 딸아이한테 닥쳐온 불행입니다. 그래도 초등학교때
부터 자주 던진 제 성교육이 아이의 일생을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
니다.
우리 착한 딸, "세상엔 어떤 어려움도 있고 때로는 불가항력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다가 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럴땐 엄마하
고 아빠 그리고 형제들을 생각해라.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이야. 만일 너가 타인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
냐. 그러기 때문에 목숨하고는 바꾸지말아라"하는 말을 초등학교때부터 딸
아이들에게 했었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 제 말을 듣고 딸은 커 왔습니다.
다른 날보다 좀 늦네 싶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밤 10시, 밤 11
시, 밤 12시...딸아이가 들어온 시간은 새벽 2시. 메이커를 찾지 않는 딸아
이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이었고 흐트러짐이 없었는데 그날 들어온 딸아
이 얼굴엔 멍이 들어 있었고 교복치마는 흙이 묻어 있는채로...집에 들어서
지마자 쓰러져버린 내 딸...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버린 눈가, 그리고 다
큰 아이 딸아이 다리에 선명한 핏자국...그것이 성폭행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응급 후송이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예기치 못할, 아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아이의 성격은 극
도로 초긴장상태에 있었고 그때부터 학업은 접어야 했습니다. 늘 재잘거리
는 수다는 벙어리처럼 입이 닫혀졌습니다.
딸아이의 일기장에는 '두 사람이...두 사람이...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무서
운 말들이 적혀 있었고 딸아이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에다 우리
가족은 아예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습니다.
며칠후 걸려온 전화 한 통화. 경찰서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고 그곳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는 두사람.제 또래의 딸을 가지고 있을법한 제 나이의 남자들이었습니다. 경찰서 안의 집기가 보였고 무조건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법보다 먼저인게 주먹이라 하지만 법 앞에 주먹은 뒷전이었습니다.
딸아이가 늦은 시각, 학원에 오는 시각에 맞춰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성폭
행을 했고 피해자가 몇 명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치심때문인지 모두들
없던 사실로 미루었어요. 하지만 전 제2, 제3의 범행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 파렴치한 사람들을 법 앞에 서게 했습니다. 만일 그 때
제가 숨겼더라면 지금의 딸은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딸은 진술을 했고 그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저희 가족은 딸아이의 모든 면을 관찰했습니다. 병원부터 집에서
의 모든 생활까지. 아내와 저, 그리고 작은 딸아이까지 우리 가족은 매일
매일 사랑의 편지를 적었고 힘있는 자가 힘없는 사람을 괴롭혔다는 단순한
일로 생각하게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울었고 또 울었고 닥치는대로 집기를 던졌고 송곳으로 자신을 자해했습니다.
"딸아~ 그래. 내가 전생에 너한테 빚을 많이 졌나보다. 마음껏 나한테 풀어라.." 그렇게 말을 하는데 딸은 저를 송곳으로 찔렀습니다. 작은 어깨에 깊이 패여 피가 흘러내렸고..하지만 저는 아픈줄을 몰랐습니다. 딸아이가 받은 상처에 비하면 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딸아이의 행동에 눈물만 흐르더라구요.
"딸아~우리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좋은 인연만 쌓아가자.
그래야 다음 생애에도 너와 아빠가 부녀지간의 인연이 되지 않겠니.
너 이렇게 힘들고 그리고 너는 한 사람이지만 나머지 엄마 아빠 그리고 니 동생은 어떡하니..."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송곳으로 찔린 제 어깨를 아내는 헝겊으로 감싸줄려고 했었지만 저는 아내의 눈을 보며 말렸습니다. 내 착한 딸은 "아빠 미안해..미안해..제가 잘못했어요.."하면서 송곳에 찔린 나의 어깨를 감싸주더군요.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우고 가는게 공부였습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학원에서 그렇게 혹사시켰으니...
학업을 잠시 접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같이 산에 올라가고
낚시를 가고, 바다 가고, 재래시장의 좌판에서 애가 좋아하는 핸드폰 줄과
햄스터를 사주고 떡볶이를 같이 먹고.. 그렇게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던 딸
이 "아빠~나 그때 죽을려구 그랬는데. 아빠 말이 생각나서 죽지 않았어..."
하구 말을 합니다. '성폭행과 목숨은 바꾸지 않는다'는 아빠의 그 말을 마
음속에 새겨놓았던 모양입니다.
늘 중간이었던 성적이 올해 다시 복학해서 성적도 최상위급으로 몰라보게 나아진 딸..,
딸을 보며 전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알 것 같습니다. 그때 만일 딸아이에게 무서운 일이 생겼다면 우리 가족이 짊어지고 가야 할 좌절은 엄청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틈틈히 말해 왔던 작은 성교육이 이렇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아빠 말처럼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면 돼!" 그렇게 말하는 딸.
어느새 아빠 마음까지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지...
저는 매일 딸아이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큰 딸 그리고 작은 딸... 엽기적인 유머에 찐한 사랑의 농담까지 그럴때마다 더 찐한 농담으로 되돌아오는 딸아이들의 메일.
우연히 차 안 라디오에서 들려온 편지의 사연. 저는 부끄러움도 잊고 울었습니다. 그 가족이 겪은 고통과 슬픔이 안타까워 울었고 한없는 사랑으로 수렁을 헤쳐나온 그분들의 용기에 감동해서 울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담담히 떠올리며 적어주신 한분의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합니다. 가족들과 언제까지나 행복하세요.
<에필로그>
이 편지를 소개해드리기까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사연에 감동받은 저는 해당 라디오 연출자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인용하고 싶으니 편지 원문을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출자는 뜻밖에 "곤란하다"며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 분이 많이 고민하다가 보낸 글이기 때문에 다른 데는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분의 신상을 묻거나 연락처를 가르쳐달라는게 아니라 그저 방송으로 나간 편지 내용을 보내달라는 것이었기때문입니다.
"혹시 그 분이 라디오방송 말고는 아무데도 보내지 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데는 보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미 전국으로 방송된 사연을 다른 데는 줄 수 없다는 말, 무슨 영문인지...
"이렇게 감동적이고 교훈을 주는 사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저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끝내 거절하는 그 연출자가 야속했습니다. 결국 "정 그러시면 그냥 쓰는수밖에 없겠네요"했더니 "어떻게요?"하더군요. "다시 듣기로 클릭해서 방송을 받아 적어야죠"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게 대화를 끝냈습니다.
다른 일같으면 속이 상해서라도 집어치웠겠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밤 늦게 집에 와서 인터넷을 접속해 그 라디오방송에 들어갔습니다. 자정이 된 시각, '다시 듣기'를 해서 받아적는데 '일시 정지'버튼을 누르면 아예 방송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도 없이 마우스를 조작해야 했습니다.
정말 무식한 방법이었지요. 하지만 그분의 사연은 토씨 하나라도 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듣기'를 150번쯤 한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받아쓰기(?)를 끝내니까 새벽 한시 반이 넘더군요. 그 연출자가 메일로 줬더라면 1분도 안돼 끝났을텐데..
그렇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감동적인 사연을 150번이나 더 들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그분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또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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