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3/07/03 00:54:22 |
Name |
ma[loser] |
Subject |
이윤열선수의 계약 파문과 프로게이머협의회 |
일단 오해가 있을가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게이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방송출연 거부에 대해선 절대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우승상금 천만원, 2천만원이라는 화려함의 이면에는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대다수의 프로게이머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승상금이 줄어들거나 동결되더라도 총액상금의 규모와 출연료의 증액으로 좀더 많은 프로게이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전체적인 프로게임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게이머들의 안정적인 생활 보장은 결국 전체 게임리그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게이머들의 인기나 노력은 둘째 치더라도 게이머들의 존재 자체가 동양이나 mbc라는 거대자본의 자회사들의 이익발생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게이머들의 수입은 턱없이 모자르는 액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협의회측의 방송거부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까지 벌인 방송사에 대한 이번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vod 금지 같은 경우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일뿐이라 생각되며 유료vod를 통해 발생한 방송사의 새로운 수익창출에 따른 선수들의 출연료 인상 요구라 생각하면 이 역시 매우 합리적인 요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거부 사태와는 별도로 이윤열 선수에 대한 협의회 측의 태도에 대해선 매우 강력히 비판하고 싶습니다. 프로게이머협의회는 비록 명칭은 협의회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단체라는 점에서 사실상 노조의 역할을 수행하는 단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KTF와 송호창감독이라는 에이전시는 사용자측에 불과할 뿐이고, 협의회라는 노동조합 성격의 단체가 보호해야할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이윤열이라는 프로게이머협의회의 회원인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협의회측이 일방적으로 특정 사용자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보호해야할 협의회의 회원을 비난하고 징계운운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KTF나 송호창 감독의 이익, 또는 기존관행의 보호따위가 아닙니다. 아니 최소한 프로게이머협의회 입장에서 만큼은 가장 중요한 일은 이윤열 선수가 부당한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에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구단협의회도, 감독협의회도 아닌 <프로게이머>들의 협의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잡한 돈문제가 얽힌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며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KTF라는 거대기업이 자본을 앞세워 프로게임계를 혼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이윤열 선수와 에이전시측과의 계약이 매우 불공평할 수 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예계 같은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한 연예인이 무명시절 맺은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해 스타로서의 성공후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대부분의 이익이 소속사나 에이전시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경우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린시절 그저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만이 소원이던 게이머들의 입장에서 프로구단 감독들과의 '좋은 조건'의 계약이란, 아니 최소한 계약시 보다 나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이윤열 선수가 혹시라도 부당한 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KTF측도 "잘못된 관행"이라는 점을 내세우는 것으로 봐서도 바로 이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그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현재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KTF나 송호창 감독 어느 일방을 옹호하고자 쓴 것이 아닙니다. 저를 황당하게 만든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의혹들에 대해 그 어느 하나 명백한 증거조차 제시하지 않은체 사용자측의 한 쪽 입장만을 두둔하며 당연히 협의회 설립의 우선 목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게이머를 보호하기는 커녕 팬들을 향해 이윤열 선수를 비난하고 징계하겠다는 '협박'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선수협의회가 '구단'협의회나 '감독'협의회가 아닌 이상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각 선수가 속한 구단이나 감독들 역시도 이번 방송거부 사태 처럼 선수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프로게이머협의회와 대립할 수는 있어도 '게이머'의 협의회가 게이머의 권리보다 감독의 권리나 에이전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더구나 이윤열 선수측이나 KTF측의 주장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입니다.
이번 이윤열선수의 계약사태와 관련된 문제를 지켜보면서 프로게이머협의회의 사실상 주체는 <감독>들이며 각 구단 감독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단체는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방송거부 사태도 각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분명히 주체는 '프로게이머협의회' 입니다. 그러나 pgr에 올라와 있는 mbc game pd분의 글에 따르면 실제 협상은 각 구단 감독들과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각 구단의 감독들과 게이머들은 항상 동일한 이익을 추구할 때도 있지만 이윤열 사태와 같이 경우에 따라선 전혀 다른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감독들이 에이전시 까지 겸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최소한 게이머들의 권리나 이익을 위해 벌어진 방송거부 사태라면 실제 협상 주체 역시 게이머가 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나이어린 선수들을 대신하여 비교적 사회경험이 많은 감독, 혹은 에이전시가 나서서 방송사들과 직접 협상을 벌이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며 또한 그 감독들과 에이전시가 모여 협의회를 구성하는 것도 지극히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윤열선수 사태와 같은 경우 선수협의회의 실제 운영 주체와 목적이 각 구단 감독과 그 감독들의 권리보호라면 그 문제는 심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팬들이나 언론의 입장에서 감독협의회의 주장과 프로게이머협의회의 주장은 분명 틀리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며 여론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프로게이머협의회측은 1일 감독회의를 열고 “이윤열이 KTF매직엔스(이하 매직엔스)와 불공정 계약을 맺어 앞으로 이윤열이 참가하는 경기는 보이콧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프로게이머협의회라는 단체의 결정이 게이머들에 의해 합의된 것이 아니라 감독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며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특정 게이머에게 피해가 가고 감독들과 에이전시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윤열선수를 징계하겠다는 결정은 프로게이머협의회의 결정이 아니라 감독협의회의 결정, 혹은 프로게이머 에이전시의 결정일 수 밖에 없으며, 감독 또는 에이전시의 결정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라면, 그 단체의 우선적 권익 보호 대상은 게이머들 보다는 당연히 감독, 또는 프로게이머들의 에이전시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감독들간의 회의로 결정된 사항에 과연 프로게이머들의 의견은 실제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이윤열 사태와 관련되서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최소한 '프로게이머협의회'의 단체의 실질적인 주체는 게이머가 아니라 감독이라는 점이며, '프로게이머협의회라는 명칭은 빠른 시일내에 감독협의회나 에이전시 협의회, 또는 그와 유사한 명칭으로 바껴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측의 이익이 우선시될 수 밖에 없는 단체를 구성해 놓고, 이 것이 노조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어용노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칭은 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실상 에이전시들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들의 결정인 것처럼 프로게이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이윤열선수에 대한 징계 운운하며 여론을 왜곡시킨 점에 대해서도 이윤열 선수와 팬들에 대한 사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ps. pgr21에서는 그동안 게시판에 분란을 일으키는 논쟁적인 글을 올리는 것을 자제하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 존재하였으며 저역시 그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pgr21의 게시판이 프로게이머들의 팬들을 위한 장소라면 프로게이머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느 게시판보다 가장 뜨거워야 된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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