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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06 23:06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올릴까 했었는데 일단 토게에 좋은 주제 올려주신 점 먼저 감사드리며...
저는 99pko부터 리그를 봐왔고 완전 매니아가 된 것은 02년부터라 잘못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건 제 뒤에 글써주실 분들이 충분히 혼내주실 거라 믿습니다...;;; 프로"게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온라인의 특수성... 야구나 축구는 애초부터 9명, 11명이 필요합니다. 혼자 할 수는 없죠. 테니스 등은 본래 귀족들이 즐기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이건 아닐수도 있습니다;;;) 분명 애초에 팀을 만들어서 하는 게임은 아니었죠.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바로 "길드" 개념입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1대 1로서도 그 가치가 있습니다만 배틀넷을 통한 "길드", "클랜" 등을 통해서도 발전했다고 봅니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실력과 전략을 논하고, 친분을 쌓아가던 그들... 이것이 지금의 팀 형태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게임계의 초창기는 벤처열풍과 함께 했죠. 길드-클랜 등은 조금 더 안정된 상황에서 게임하기를 원했고, 신주영-이기석 선수의 파급효과를 좋게 보았던 벤처기업들은 스폰서를 했습니다. 이때, 그러니까 2000년 쯤에 팀이 약 30여개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성호 게이트였던가요? 이후 벤처거품이 빠지면서 대부분의 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남아있는 팀은 SouL, Kor 등입니다. 이 팀들은 길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SM(Starcraft Mania)은 한빛소프트가 되었죠. 중간에 네오엠파이어는...거의 모르니 넘어가고... KTF와 삼성 칸도 이때 있었습니다. (삼성 칸은 중간에 사실상 사라졌었다는 이야기도... 이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2002년 중반 IS와 한빛, 두 라이벌이 양대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에 앞서 김정민, 최인규, 이재훈 선수 등은 GO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팬들은 "팀전을 펼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에 차츰 관심을 가졌고, 임요환 선수가 IS를 떠나 동양과 계약하고, 2003년 동양이 개인스폰을 넘어서 이창훈, 최연성, 백대현, 김성제 선수를 영입하면서 움직임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원투펀치를 IS로부터 영입한 KTF 매직엔스, SouL과 Kor, 02년 중반쯤 창단된 POS 등 비기업팀들이 합세했고, 대니얼 감독님은 모든 선수들의 개인스폰을 AMD로 통합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3년 2월 계몽사배 팀리그가, 3월 에버 프로리그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개인리그 외에 뛸 수 있는 또다른 무대가 열렸으니 좋고, 감독님들은 자신의 팀의 역량을 알릴 수 있으니 좋고, 팬들은 또다른 형태의 리그를 접할 수 있으니 좋고, (당시엔 리그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리그는 충분히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길드" "클랜" 문화가 뿌리가 되었다고 개인적인 주절거림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더 나아가야 합니다. 좀더 기반을 잡고, 규정을 정하고,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협회, 감독, 코치, 선수, 매니아 모두가 관심가져야 할 사안이라 생각...
05/11/07 11:14
프로리그라는 표현보다는 팀 단위 리그라는 말이 더 정확할 듯 싶군요.
03년 봄에 온게임넷에서 프로리그가 열리고 엠비씨 게임에서 팀 리그를 시작할 즈음을 회상하면.....어떤 특정인이 스타에도 팀 단위 리그를 도입하자라고 해서 열렸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레'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2001년이나 2002년 초 정도까지만 해도 군소 규모의 팀이 존재하다가 2002년 후반기경 정도 되서는 작은 규모의 팀은 상당수 정리되고 거의 현재와 비슷한 구도가 형성됩니다. 특히 IS나 한빛 같은 거대 구단이 나오고 라이벌 구도도 형성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02스카이배 결승 이후 특별전 형식으로 2회에 걸쳐 IS 대 한빛의 대결이 성사됩니다. 그리고 겨울 동안 양 방송사에서 자연스럽게 팀 단위 리그를 준비하다가 각각 팀 단위 리그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이겠죠. 이유보다는 결과에 가깝겠지만 팀 단위 리그가 활성화됨에 따라 e스포츠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고 봅니다. 예전처럼 개인 리그만 있었다면 SK나 팬텍같은 대기업 스폰서가 e스포츠에 발을 들였놓기 힘들었겠죠. 광안리 10만 관중도 어려웠을 것이구요.
05/11/10 14:46
방송리그 이전 엄청난 숫자의 팀들이 존재했었죠. KIGL, KGL, MGL, KPGL에 모두 50여개 팀이 바글바글 했었습니다. 그중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을 자랑하던 KIGL은 메이저리그 10여개팀이(20개팀인듯도 합니다...) 1년동안 리그를 운영하고, 선수수급은 역시 1년내내 진행되는 전국투어예선전을 거쳐 상위입상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었습니다. 임요환 선수가 바로 이 KIGL, 일명 '키글'에서 유명해진 선수죠.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은 팀리그전이 개인리그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오프라인 팀리그의 초대전성기라 할수 있는 위의 시기는 1999년입니다. 다시 말해 각종 이벤트성 개인 토너멘트대회가 난립하고, 블리자드인증 대회가 메이져대회로 공인받던 시기에 이미 몇몇 단체를 중심으로 프로리그 대회가 아주 성대하게 진행되어 왔다는거죠.
05/11/12 10:50
kigl이나 kgl등의 리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리그의 난립,주최측의 미숙도 리그실패의 큰 이유였지만.. 결국 모든 리그들은 단명했습니다. pko나 키글은 대교방송이나 인천방송등에게 경기중계도 이뤄진 상태였는데도 인지도 확보엔 실패했습니다. 스타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구가한 건 온게임넷이나 겜큐등의 개인리그였구요.. 현재의 프로리그가 등장한 건 03년인데.. 00년도부터 02년도까진 팀단위 리그가 존재하지 않았죠.. 한번 실패한 형식이 다시 기회를 얻는 건 쉽지 않습니다.. 팀리그같은 경우는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고.. 그걸 대체한 개인대회들이 꽤나 인기를 모은 상황에서 다시 부활했다는 건데.. 프로리그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___-;; 다만 죽은 자식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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